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한덕문(한생원)이다. 그는 국가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가족사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그의 아버지 한태수는 동학 때 지방수령에게 땅을 빼앗긴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한덕문이 21살 때 아버지가 피땀으로 마련한 논 열서너 마지기를 넘겨주고 겨우 동학 잔당의 누명을 벗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화가 이루어졌을 때에도 아무런 민족적 울분을 느끼지 않는다.
채만식의 작품이 문단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은 1933년을 전후한 시기부터이다.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 「인형의 집을 찾아서」를 시작으로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 「인텔리와 빈대떡」 등을 통해 동반자적 성향의 풍자작가로서 독특한 면모를 획득했던 것이다.
하지만, 카프 제2차 검거사건의 와중에서 약 2년 동안 문필활동을 중단했던 그는 1936년 초 창작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형이 살던 개성으로 이사한 뒤 1940년 서울 부근의 안양으로 올라오기까지 5년 여 동안 머물면서 「탁류」(1937-1938), 「태평천하」(1938) 등의 문제작을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