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고매한 사상을 전파하면서도 자기 아내를 설득하지 못하고 잦은 불화를 일으키자 현실 생활과 신념의 불일치로 톨스토이는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는 그것이 완전히 일치하는 조화의 세계를 바랐던 것입니다.
마침내 톨스토이는 1910년 10월 28일(서력 11월 10일) 날이 밝기 전에 의사만을 데리고 이전에 세 번씩이나 시도했다가 이루지 못한 가출을 실행했으나, 도중에 급성 폐렴에 걸려 야스나야 뽈랴나에서 2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랴잔ㅡ우랄 선의 작은 기차역 아스따뽀보 역장 관사에 옮겨졌습니다.
가족, 제자, 친구들이 달려왔을 때는 이미 위독한 상태였으며, 11월 7일 새벽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유해는 그의 유언대로 숲속에 묻혔습니다.
유언에 따라 묘비도 십자가도 없는 소박한 무덤이었습니다.
828년 9월 9일 러시아에서 출생하였으며 카잔주립대학교 법학을 중퇴하였다. 19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 겸 사상가인 그는 처녀 시집 《서정시 Lirika(1907)》로 문단에 등장했다. 뒤에 산문을 시작하고(1910~11) 중편 ‘변인(變人) Chudaki(1911)’, ‘절름발이 아저씨 Khromoi Barin(1912)’ 등을 집필, 이들은 19세기 말 지주의 기형적인 생활을 그린 것으로 이로써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 계승자라는 지위를 얻었다. 대표작인 ‘전쟁과 평화’(1869)와 ‘안나 카레니나’(1877)를 완성해 명성을 얻은 톨스토이는 40대 후반에 중년의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의 문제를 깊이 숙고했다. ‘고백록’(1879)은 톨스토이의 생애를 사실주의 문학 중심의 전반기와 종교 사상 중심의 후반기로 나누는 분기점으로 여겨진다. 1910년 11월 7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