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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 상권

1999년 6월 15일 서해에서 대한민국 해군장병 6명이 전사하고 고속정 1척이 침몰하는 대 전투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에 국민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햇볕정책의 달콤함이 국민의 안보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던 탓이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힘없는 내가 전사자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한 가지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남기자. 하지만 소설을 쓸 수 있는 소양이 문제였다. 그 자질이야말로 전사한 용사들과 유가족들에게 예(禮)를 갖추는 일이며, 독자들을 기만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여겨졌다. 2년에 걸친 나의 글공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왜, 모두가 침묵하는 일에 나서겠다는 무모한 짓을 했을까? 왜 그랬을까? 내게는 숙명과도 같은 이유가 있었다. 나는 연평해전이..
1999년 6월 15일 서해에서 대한민국 해군장병 6명이 전사하고 고속정 1척이 침몰하는 대 전투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에 국민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햇볕정책의 달콤함이 국민의 안보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던 탓이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힘없는 내가 전사자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한 가지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남기자.
하지만 소설을 쓸 수 있는 소양이 문제였다. 그 자질이야말로 전사한 용사들과 유가족들에게 예(禮)를 갖추는 일이며, 독자들을 기만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여겨졌다.
2년에 걸친 나의 글공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왜, 모두가 침묵하는 일에 나서겠다는 무모한 짓을 했을까?
왜 그랬을까?
내게는 숙명과도 같은 이유가 있었다.
나는 연평해전이 벌어진 연평도 해군고속정전진기지에서 1983년과 84년에 근무했었다.
최순조(음력 1955. 4. 29.) 경상남도 창원 
1989~2005 미주 중앙일보 칼럼리스트
1973~1984 대한민국 해군 부사관
그의 후배 이름 하나가 전쟁기념관 동판에 새겨져 있다. 1970년대 후반 대간첩작전 중 전사했다. 자신도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후배 이름 바로 아래 있는 이름이 윤영하다. 윤영하는 2002년 그 유명한 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장교다. 숨진 날짜 순서대로 이름이 들어가는데, 그렇다면 1970년대 후반부터 2002년까지 30년 가까이 전사한 군인이 없다는 얘기다. 부상자는 이름이 안 들어간다지만, 대간첩작전 자체가 거의 없었다는 건가. 태평천하였던가. 최순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연평해전』을 썼다. 자신이 군 생활 마지막을 보낸 곳이 바로 연평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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