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의 작품에는 이러한 객관성 외에 얼른 보기에 그것과 모순되는 서정적인 요소가 있는데, 이 두 가지 요소가 미묘하게 결합한 것이야말로 이 작가의 문체의 가장 큰 특색이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1886년경부터 체호프는 악에 대한 무저항, 육체노동에 참가, 생활의 간소화 등을 주장하는 톨스토이의 사상에 강하게 끌리게 되어 그 영향을 받은 작품도 몇 편 썼으나, 몇 해 후에는 톨스토이주의에 대하여 날카롭게 비판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계기가 된 것이 1890년에 그가 시도한 사할린 섬에 대한 조사 여행이었다.
체호프는 1890년 4월 21일에 모스크바를 출발하여 시베리아를 횡단한 후 7월 11일에 사할린 섬에 도착했다.
사할린에 3개월간 머물러 있으면서 약 1만 명의 도형수 및 주민의 신상 조사서를 작성한 후 그 곳을 떠나 동지나해, 태평양, 수에즈, 오데사를 거쳐, 12월 8일 모스크바에 돌아왔다.
체호프는 1892년에 모스크바 남쪽에 있는 메리호보 마을로 이사했다.
그는 이곳에서 7년 동안 살며 비로소 창작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체호프가 작가로서 원숙기를 맞이하여 역작을 잇달아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은 이 메리호보 시대였다.
안톤 체호프 Chekhov, Anton Pavlovich(1860~1904)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는 1860년 1월 남 러시아의 아조프 해에 면한 작은 항구 도시 타간로그에서 상인 파벨 체호프의 삼남으로 출생했다. 16세 때 아버지의 파산으로 중학을 고학으로 마쳤다. 1879년에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단편소설을 오락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하였다. 1880년대 전반 수 년 동안에 관리의 죽음 (1883), 카멜레온 (1884),《하사관 프리시베예프》(1885),《슬픔》(1885) 등의 뛰어난 단편을 발표했다. 예술극장의 여배우 올리가 크니페르와 1901년 결혼하고, 3년 후 독일의 요양지 바덴바덴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