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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의 연애론

스탕달 (Stendhal) 본명은 앙리 벨(Henri Beyle)로 1783년 프랑스 그르노블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자신과는 성향이 매우 달랐던 가족과의 불화 속에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00년 용기병소위로 임관 받아 이탈리아로 떠난 이후 스탕달은 나폴레옹 제정의 관료로서 몇 차례의 승진과 함께 출셋길에 오르지만,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과 더불어 실직하게 되었다. 그 후로 칠 년간 그는 밀라노에 머물면서 음악, 그림, 연극을 즐기고 글을 써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로서 호소하는 것은 특히 이 마지막의 자질, 곧 공정성에 대해서이다. 저자는 곧잘 프랑스에서 ‘참으로 프랑스다운’ 저작이나 의견이나 감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들어왔..
스탕달 (Stendhal) 본명은 앙리 벨(Henri Beyle)로 1783년 프랑스 그르노블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자신과는 성향이 매우 달랐던 가족과의 불화 속에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00년 용기병소위로 임관 받아 이탈리아로 떠난 이후 스탕달은 나폴레옹 제정의 관료로서 몇 차례의 승진과 함께 출셋길에 오르지만,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과 더불어 실직하게 되었다.
그 후로 칠 년간 그는 밀라노에 머물면서 음악, 그림, 연극을 즐기고 글을 써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로서 호소하는 것은 특히 이 마지막의 자질, 곧 공정성에 대해서이다.
저자는 곧잘 프랑스에서 ‘참으로 프랑스다운’ 저작이나 의견이나 감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들어왔으므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제공하고 또한 ‘어떤 곳에서라도 참된’ 감정이나 의견에 대해서만 경의를 표한다든가 하여 그 성격이 매우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부터 미덕으로 찬양되고 있는 저 배타적인 정열을 자극한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역사나 도덕, 나아가서는 과학 또는 문학이 라인 강이나 산악지대나 영불해협을 건너자마자 실로 독일적, 러시아적, 이탈리아, 그리고 에스파냐적 혹은 영국적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스탕달(Stendhal) 1783년 1월 23일~1842년 3월 23일,
본명 마리 앙리 벨(Marie Henri Beyle).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 지방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스탕달은 외가의 영향으로 육군에 입대하여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에 참가했으며 원정을 계기로 어려서부터 동경해온 이탈리아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군인의 자격을 잃은 스탕달은 이탈리아로 건너가 서평과 시사평론을 기고하는 등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1822년(당시 44세) <연애론>, 1830년에 <적과 흑>을 발표했다.
특히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 <적과 흑>은 왕정복고하의 프랑스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그의 정치사상의 핵심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탕달은 1842년 파리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유해는 몽마르트르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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