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0 0 0 0 0 10일전 0

도련님

소세키 자신도 문학에 뜻이 있었기에 그때 문학으로 지망을 굳히게 된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마사오카 시키(正規)와 친하게 지내며 서로의 문장에 대해서 비평을 하였는데 그때 처음으로 ‘소세키’라는 필명을 사용하게 된다. 이 필명은 억지를 부린다는 뜻의 ‘침류수석(枕流漱石)’이라는 중국 속담에서 유래된 것이다. 중국 진나라 초기에 손초(孫楚)라는 사람이 속세를 떠나 시골로 은거하면서 친구에게 나는 돌을 베개 삼고 시냇물로 양치질하는 생활을 하며 지내려하네 라고 말한다는 것이 거꾸로 ‘나는 시냇물을 베개 삼고(沈流) 돌로 양치질 하려(漱石)한다네’ 라고 하며 억지를 부렸다는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소세키 자신도 문학에 뜻이 있었기에 그때 문학으로 지망을 굳히게 된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마사오카 시키(正規)와 친하게 지내며 서로의 문장에 대해서 비평을 하였는데 그때 처음으로 ‘소세키’라는 필명을 사용하게 된다.
이 필명은 억지를 부린다는 뜻의 ‘침류수석(枕流漱石)’이라는 중국 속담에서 유래된 것이다.
중국 진나라 초기에 손초(孫楚)라는 사람이 속세를 떠나 시골로 은거하면서 친구에게 나는 돌을 베개 삼고 시냇물로 양치질하는 생활을 하며 지내려하네 라고 말한다는 것이 거꾸로 ‘나는 시냇물을 베개 삼고(沈流) 돌로 양치질 하려(漱石)한다네’ 라고 하며 억지를 부렸다는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 : 1867~1916
1867년, 도코(東京)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긴노스케(金之助)이다.
1889년 5월에, 마사오카 시키의 시치소슈(七草集),를 한문으로 비평하면서 최초로 ‘소세키(漱石)’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1900년부터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소세키는 런던에서 문학에 대해 깊이 탐구했는데 그때 심한 신경쇠약을 앓게 된다.
2년여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1903년 1월에 귀국하여 제1고등학교와 도 데이코쿠 대학의 교단에 섰었다.
귀국 후 도교제국대학 전임강사로 재직하던 중 문예지 (호토토기스)에 발표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가 성공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아사히(朝日)신문사의 전속 작가가 되어 우미인초를 연재한 후 도련님<풀베개>(1906), <산시로>(1908), <그 후>(1909), <문>(1910), <행인>(1912), <피안에 이르기까지>(1912), <마음>(1914), <유리문 안에서>(1915)등 일본 근대문학사에 획을 굿는 많은 작품들을 완성하였다.
특히 (그후)는 <산시로>와 <문>과 더불어 나쓰메 문학의 초기 3부작을 이루며 진정한 근대문학의 효시를 알리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1916년 위궤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페이퍼 대표 이병훈 | 316-86-00520 | 통신판매 2017-서울강남-00994 서울 강남구 학동로2길19, 2층 (논현동,세일빌딩) 02-577-6002 help@upaper.kr 개인정보책임 : 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