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유년기에서 청년기에 이르는 주인공의 정치적 · 종교적 · 지적편력을 다룰 뿐만 아니라, 가정과 종교와 국가를 초탈한 그가 예술가로서의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결국에는 자기 유배의 길을 떠나는 과정까지를 그리고 있다.
그러므로 작가의 서술은 주인공의 자아상 탐색과 정신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결국 이 과정을 살핀다는 것은 곧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20세기 시와 소설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더블린 태생의 두 예술가는 자신들이 자란 도시 더블린에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활력에 찬 언어의 이미지를 정교한 예술 이념에 부합시킴으로써, 위대한 예술 창조가 가능하다고 본 예이츠는 자국의 정신적 토양을 발굴하여 새로운 예술의 싹을 찾아내려 했다.
제임스 조이스는 1882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0세 때 가정 형편이 급속히 나빠져 채권자에게 쫓겨 잦은 이사를 하는 등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도 예수회 계열 학교에서 교내 성적 우수상, 전국 백일장 학년 최고상을 받고 교내 신심회의 회장이 되는 등 모범적인 학생의 모습을 유지했다.
하지만 조금씩 아일랜드와 가톨릭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고, 아일랜드를 떠나 예술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이때 느낀 심리 변화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18세 때부터 잡지사에 희곡, 산문 등을 기고하기 시작했고 22세에 파리에서 평생을 함께한 동반자 노라 바너클을 만나 함께 유럽을 떠돌며 집필을 계속했다.
의학을 공부하려 하기도 하고, 교사, 은행원 등의 직업을 갖기도 했지만 빈곤과 고독 속에서 그가 돌아간 곳은 언제나 문학이었다.
1912년 마지막으로 더블린을 방문한 이후 자신이 떠나온 아일랜드로는 돌아가지 않은 채 망명자로서 국외를 방랑했던 조이스는 에즈라 파운드, 예이츠, 마르셀 프루스트 등과 교류했으며 파리와 취리히를 오가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가다 1941년 5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